30대의 내가 되어

퇴사를 했다.

윤알콩 2025. 11. 8. 11:47

3년 간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11월 6일에 일어난 일이다.

 

나는 2022년 7월에 서울의 한 홍보대행사에 입사했다.

대학원 논문을 준비하던 도중, 갑작스러운 현타와 함께 돈이나 벌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원한 회사에 덜컥 합격하게 된 것이다. 평소에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 좋아하던 성격을 고려해 언론홍보 쪽으로 지원했더니 운좋게 일어난 결과였다.

어지러운 내 책상

 

하지만, 언론홍보라고는 단 하나의 배경지식도 없던 상황에 말그대로 맨땅에 헤딩으로 이런저런 일들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어느덧 3년이 됐다.

 

3년동안 다양한 고객사를 맡아 홍보 AE로 일을하며 정말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보도자료 작성, 기자미팅, 미디어데이 운영, 팝업이나 전시회 행사 현장진행, 기자 인터뷰 어레인지 등 돌이켜보면 수많은 일을 했다. 그만큼 스트레스도 컸다.

행사 당일 날

 

안그래도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성격인데 거기에 장거리 출퇴근, 대행사라는 직장의 특수함이 얹어주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했다. 김포에서 출퇴근을 해야하는 직장인에게 골드라인은 절망의 구간이 아닐 수 없었다. 매일같이 사람들 사이에 껴 서울을 오며가며 신체에 더해 정신적으로 가해지는 스트레스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회사에 도착했을 땐 아침부터 쉴 새없이 몰아치는 업무들로 하루종일 진이 빠졌으며, 시즌 별로 들어가야 하는 제안서 작업은 지옥에 가까웠다.

 

하지만 내가 결정적으로 퇴사를 마음먹게 된건 친했던 동기들의 연이은 퇴사였다. 우리 팀은 내가 입사한 후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인력의 변동없이 또래 동기들이 대리, 사원으로 뭉쳐 일을 했다. 마음도 잘 맞았고 어디하나 모난데 없는 여자 팀원끼리 모여 정말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올해 들어 한두명씩 떠나가기 시작했다. 

동기가 준 간식(진짜 달다)

 

돌이켜보면 끔찍한 출퇴근길과 업무지옥에도 날 버티게 해준건 사람들이었다. 정들었던 고객사 담당자, 따뜻하게 품어주던 상사, 애틋한 동기들까지.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라는 고민은 사실 한참 전부터 시작됐다. 다만 사람들이 좋기에 조금만 더 해보자, 해보자 했던 건데 팀원들이 하나둘씩 빠지자 무너지게 됐다.

 

팀원들이 떠난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동종업계 이직, 직무 변경, 무계획 퇴사 등... 하나둘씩 떠나가는 팀원들을 보며 안그래도 쌓인 스트레스에 우울감이 더해졌다. 참지 못하고 9월 초 퇴사를 말씀드렸다. 내가 퇴사를 말씀드리던 순간 안경을 벗고 미간을 꾹꾹 누르시던 팀장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인수인계와 퇴사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가며 3년간 내가 일궈왔던 업무들, 자료들, 모든 순간들을 다시 되새겨볼 수 있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해왔는지와 성실하게 이 회사에 임했는지 돌이켜봤을 때 참 열심히 살아온 내가 정말 대견했다. 

 

퇴사 답례품으로 귀여운 자일리톨 캔디를 준비했다.(손편지는 따로 있다) / 귀여운 후임이 써준 이별 편지

 

당연히 함께한 사람들과의 인사도 제대로 나누기 위해 팀원들마다 작은 손편지와 함께 소소한 답례품도 준비했다. 퇴사를 준비하며 함께 했던 모든분들과 하나하나 좋은 이야기를 나누며 따뜻하고 훈훈하게 잘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나는 이런 방식의 퇴사가 좋다. 아무리 비즈니스 사이라지만 언젠가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눈물나는 마무리.

 

정말 치열하고 열심히 일해왔기에 후회나 미련은 하나도 없었다. 속시원히 안녕을 고하고 나올 수 있었던 내 인생의 첫 퇴사다.

첫 회사에서의 든든한 경험을 발판으로 어디에서나 잘 해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3년 간의 경험을 원동력으로 어떤 일, 혹은 어떤 회사에서 일하던 나는 잘할 수 있을 거다.

 

고마운 내 첫 회사 이제 안녕!

마지막 퇴근 길